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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

w. 사슈미

 

** 평행세계의 세븐틴 ** 아이돌 세계관의 알오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H /

 

모자에 마스크까지 낀 모습이 더 수상해보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순식간에 히터의 훈기가 피부에 닿는다.

 

“약은?”

“받았어.”

“..의사는 뭐래?”

“알 바 아니잖아.”

 

그래도 보호자라고 핸들을 잡고있던 정한이 물어왔다. 지수는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한 뒤 그대로 입을 닫았다. 대답이 아니고 무시였지만. 잠시 지수를 쳐다보던 정한은 안전벨트 하라는 말만 남긴 채 부드럽게 차량을 출발시켰다. 균형을 잃은 침묵 속에서, 그보다 더 무겁고 차가운 향기가 퍼진다. 기분 좆같다 이거지. 지수는 애써 그 신호들을 무시하며 짙게 썬팅 된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에 집중했다. 저 흘러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 같은 게 있겠지.. 홍지수는 13명 중 유일하게 오메가의 형질을 타고났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사람들의 형질을 구분하려 해본다.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모두 그냥 사람으로 보인다.

나도. 우리도 밖에서 보면 그러할 것이다.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홍지수의 옆에 앉아 작게 짜증을 내며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윤정한은 13명 중 유일하게 알파의 형질을 타고났다. 다른 멤버들은 모른다. 매니저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홍지수의 형질을 알고 있을 뿐, 윤정한이 알파라는 건 심지어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여기 둘 말고는. 의학의 발달로 벌써 오래 전부터 알파와 오메가가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 졌음에도 형질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밝히지 않는 편이 좋았다. 병원에 오는 것도 매니저에게 알리기가 껄끄러워 정한과 함께 올 정도였다. 최대한 문제 없는 척, 평범한 척을 해야 한다. 회사에 들어올 때도 조건이 붙었다.

 

흠, 홍지수군 다 좋은데. 오메가네요?

 

지수의 서류와 PR자료를 훑어보던 캐스팅 매니저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홍지수는 오디션에서 떨어질 거라 직감했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새 코 앞으로 성큼 다가온 그는 덜 자란 지수의 마른 어깨를 잡고 얼굴을 요리조리 살폈다. 무례한 감상을 끝낸 뒤에는 마스크는 좋은데, 중얼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요즘은 약도 잘 나오고, 육안으로는 뭐 알파고 오메가고 보통사람이랑 구별이 불가능하니까. 뭐 문제 될 일만 안 만들면 좋겠어요. 밖에서는 또 워낙에 인식이 안좋고 하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죠? 어린 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일부러 멀리 있는 병원까지 왔더니 벌서 창 밖이 어둑어둑했다. 창에 비친 자신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결국 짐승이라는 거지, 자기들과는 다르게.. 본능에 잠식되는.

 

-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약봉지부터 뜯었다. 정한은 곧장 부엌으로 향하는 지수에게 말을 걸려다 이내 포기하고 머리를 털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새하얀 원형 제제 몇 알을 손에서 굴리다 입 안에 털어 넣는다. 그러니까 이 약은 짐승의 본능에 잠식당하지 않게 도와주는 약이다. 알파와 오메가는 보통의 인간과는 다르게 발정기를 가진다. 발정기가 온 동물들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교미할 상대를 찾듯이, 알파와 오메가는 이 약이 없다면 발정기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지 못한다. 물론 알파는 약을 주기적으로 챙길 필요가 없다. 러트가 아예 없는 알파도 있다. 정한이 그랬다. 하지만 저는 달랐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히트사이클에 정신 놓고 윤정한 밑에서 다리를 벌리지 않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약을 챙겨먹어야 했다. 다른 멤버들은 그저 지수가 유난스럽게 건강을 챙기는 것 정도로 알았다. 홍지수 원래 몸 약하잖아. 옆에서 정한이 거들기도 했고. 정한이 아닌 척 챙길 때 마다 홍지수는 더욱 비참해졌다. 차라리 전부 베타였으면. 똑같은 짐승인데 저만 고통받고있는 현실이 끔찍하게 싫었다.

 

분명히. 회사에선 새로 들어오는 아이들도 전부 베타라고 했다. 확실히 처음엔 다 베타였다. 베타들은 둔하다. 절대 제 페로몬을 느낄 수 없다. 불편할 것이 없었다. 저만 관리를 잘 한다면 회사에서 우려하던 일 같은 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어린시절부터 좁은 공간에 가두어져 훈련된 아이들은 서로 살을 부대끼고 노는 데 익숙해 보였다. 밖에서 꽤 나이를 먹고 들어온 저와 정한만이 그런 놀이들을 어색해 했다. 그러면 연차가 쌓인 동료들이 늙은 막내 주제에 뭐 그렇게 가리는 게 많냐며 면박 아닌 면박을 줬다. 어차피 여기 아이들은 다 베타니까. 의식적으로 살갗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며 그런 환경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늦깎이 연습생이란 명목으로 늘 붙어 지내던 윤정한의 눈빛에서 가끔 묘한 구석을 느끼긴 했지만 강도 높은 연습으로 과민해진 탓일 거라 여겼다. 결국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말이다. 윤정한은 데뷔가 임박하고 나서야 발현했다. 형질은 알파. 최악이었다. 간혹 성장이 더딘 돌연변이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바로 옆에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상상하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파서 며칠을 쉬던 그가 다시 연습실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앓았다는게 정말인지 얼굴은 조금 수척해졌지만 커다란 삼백안 속 약간 노르스름한 눈동자는 더욱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사춘기를 갓 넘긴 아이 같던 미성숙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턱선이 가파르게 깎인 청년의 얼굴이 스친 날. 윤정한의 페로몬은 끔찍하게 아름다운 지배자의 모습을 하고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아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정한이 제 쪽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향이, 페로몬이 섞이자 심장이 두근거리고 동공이 확장됐다. 정한도 느낀 것이 분명했다. 홍지수가. 오메가라는 것을.

지금 이곳에 짐승은 너와 나. 단 둘 뿐이라는 것을.

 

절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평생 둘만 아는 비밀로 남기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데뷔가 힘들어졌다. 어떤 미친 회사가 한 그룹에 알파와 오메가를 동시에 넣겠는가. 윤정한이 알파로 발현했다는 건 회사도 몰라야 했다. 오직 홍지수만 알고있었다. 다행히도 여전히 베타들은 둔했고, 거짓말에 능숙한 윤정한은 홍지수가 먹는 약을 비타민으로 둔갑시켜주는 충실한 친구 역할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무사히 데뷔에 성공했고, 그러는 사이에 윤정한과 홍지수는 멤버들 사이에서 조차 각별한 관계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때는 분명 친구였으나, 발현 뒤에는 친구보다는 서로를 챙겨주는 파트너의 모습에 가까워진 둘의 관계는 밖에서 보기에도 의아했지만 그들 자신에게도 역시 애매하고 혼란스러운 지점이었다. 아무리 약으로 조절하고 산다고 해도 히트사이클이 올 때면 홍지수의 컨디션은 바닥으로 치닫기 일쑤였다. 호르몬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알파를 멀리하라고 되어있는데도, 챙겨줄 사람이 윤정한 밖에 없었다. 마치 오늘 정한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교외의 병원에 다녀온 것처럼 말이다. 가끔은 아직 증상이 오지도 않았는데 먼저 챙겨주기까지 했다. 내 페로몬을 맡는다 이거지. 그럴 때 마다 홍지수는 제 옆에 있는 알파를 비웃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정한의 컨디션이 나쁜 날 미묘하게 짙어지는 차가운 향기. 의식하기 싫어도 의식하게 됐다. 그 앞에서는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말이다. 나이를 먹고 신체가 성숙할수록 진해지는 알파의 페로몬과 어쩔 수 없이 하루 24시간 내내 붙어있어야 하는 상황이 홍지수를 몰아붙였다. 상태가 좋을 리 없었다.

 

그리고 며칠 전의 일이다.

 

활동에 투어까지 연이어 마친 뒤 급격하게 컨디션이 안좋아져 히트사이클 기간에 앓아 누운 적이 있었다. 거실 쇼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다 갑작스런 증상에 당황한 지수는 달력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주기가 불규칙해진 것 같았다. 다행히도 공백기여서 멤버들이 숙소에 많이 없었다. 조용히 처리하면 소란을 막을 수 있었다. 식은땀만 흘리다 약을 있는 대로 털어 넣고 방으로 들어갔다. 독한 약기운에 몇 번을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깼다 하며 숨을 몰아 쉬는 와중에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발정기 오메가의 페로몬을 뿜어내며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앓고있는 제 곁을 지키고 있는 건 분명히 윤정한이었다. 윤정한… 눈조차 제대로 떠지지 않았지만 페로몬으로 알 수 있었다. 막 들어왔는지 정한은 차가운 손으로 이마에 열을 짚어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까슬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드러운 손길. 커다란 손이 지수의 얼굴이며 목을 훑었다. 거기에 몸을 맡기고 의지하고 싶었다. 떨어지는 순간이 아쉬웠다.

이 손이 날.. 만져줬으면.

 

저도 모르게 든 생각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홍지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는대로 지껄였다. 메마른 입술이 달싹거렸다.

 

“나가.”

“홍지수.”

“제발…”

“…”

“나 좀 내버려 둬.”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까지 나왔다. 무슨 말을 하려던 정한은 지수의 눈물을 보자 순순히 자리를 비켜줬다. 그 순간에도 뒤돌아선 정한의 등에 매달려 애원하고 싶다는 욕망이 스쳤다. 불 꺼진 방에서 홍지수는 한동안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기분을 견뎌야 했다. 불안함과 욕망이 엉망으로 섞여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절대로 들켜서는 안된다 이건. 스스로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

 

 오늘 지수가 병원을 방문한 것 역시 그탓이었다. 이런 식으로 호르몬에 휘둘리는 사람이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직업 특성상 활동기에는 잠도 못자고 몸을 혹사 시켜야 하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연습도 버거웠다. 제 정신력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팀에게 커다란 폐를 끼치게 될 게 분명하다.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고, 처방을 받았다.

그러나 약을 먹고 아무리 기다려도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히트사이클 기간은 이미 지났음에도. 머리가 약간 지끈거리는 것 같아 식탁에 앉아있다 카톡방을 확인하자 연습실에 있던 애들이 야식을 먹고 들어가겠다며 들떠서 떠드는 게 보였다. 숙소가 왜 이렇게 조용한가 했더니 대부분 연습실에 있는 모양이었다. 숙소에 남은 건 근처에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영화를 보고 왔다던 석민과 방금 돌아온 저와 정한 뿐이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정한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한은 망설임 없이 지수 쪽을 향해서 걸어왔다. 흥분한 알파의 페로몬이 느껴졌다.

화났어? 왜 네가 화 내?

자리를 피하기 위해 일어서자 순식간에 다가온 정한이 지수의 어깨를 잡아채고 말했다.

 

  “홍지수 나랑 얘기 좀 해.”

“이거 놔.”

“오늘 병원에서 무슨 일 있었는데! 말을 해줘야 나도 어떻게 할 거 아냐.”

“네가 무슨 상관인데 대체!”

“…”

“네가 뭔데..”

 

정한은 고개를 돌려 화를 참는듯 머리를 쓸어 올렸다.

 

“홍지수 너 요즘 이상해.”

“내가 이상해?”

“…”

“너는 안이상하고?”

“그런 말 아닌 거 알잖아.”

“네가 싫어..”

“그래 알겠으니까 좀 진정해.”

 

날 이상하게 만드는.. 네가 싫어.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풀려 쓰러지는 지수를 정한이 받아 들었다.

 

“놔.. 진짜 싫어.. 너 같은 거..”

 

그럴수록 정한은 지수를 더 꽉 끌어안았다. 짙어지는 알파의 페로몬 속에서 점점 정신이 혼미해진다. 밀어내면서도 손길은 어쩔 수 없이 정한의 등을 부여잡는다. 그의 품을 파고든다. 나를 기쁘게 해줘. 그의 체취에 파묻히고 싶다는 욕망만이 남는다.

 

환자분 주변에 알파가 있나요?

주변에 강한 페로몬을 지닌 알파가 있으면 이런 식으로 오메가의 페로몬이 널뛰는 경우가 있습니다. 되도록 멀리하시거나. 그럴 수 있는 상대라면 관계를 갖는 것이 환자분의 상태에…

 

아까 의사한테서 들은 말이 귓가에 웅웅 맴돌았다.

지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Y /

 

 

“형 어제.. 슈아형이랑 싸웠어?”

 

멤버들 몇몇과 함께 연습실로 향하고 있는데 조심스럽게 뒤로 빠진 석민이 정한의 눈치를 보며 물어왔다. 슈아형 기분도 안좋아보이고 해서.. 홍지수는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방 안에 있었다. 아마 저랑 마주치기 싫어서 그런 것일 것이다. 곧 있음 옷을 챙겨 입고 연습실에 모습을 드러내겠지.

싸우긴 뭘 싸워.

아니 거실에서 큰소리 나길래.

아 장난 치다 그랬지.

대수롭지 않은 척 넘겼지만 정한도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둘러 대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저와 지수의 관계가 다른 멤버들의 눈에 이상하게 비칠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최대한 각별한 친구처럼 굴었지만 도통 거짓말을 못하는 홍지수가 몸만 닿으면 흠칫 거리며 피하는 걸 멤버들이 모를 리 없었다. 사이가 제일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홍지수와 가장 가까운 이를 뽑으라면 누구나 망설임 없이 윤정한을 뽑았다. 흔히들 말하는 친구로 정의내리기엔 여러가지 석연찮은 구석들이 남아있었지만 베타들은 상상력이 부족하다. 그들이 아는 세계에서 이런 관계에 가장 가까운 표현은 친구 밖에는 없었다.

 

홍지수는 어제 윤정한의 품에서 정신을 잃은 뒤 정한의 침대로 옮겨졌다. 지수의 방에는 룸메이트 중 하나인 석민이 이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연습실에 갔던 멤버들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정한의 방에서 재우는 게 맞았다. 제 품에 안겨 페로몬을 뿜어내는 지수를 침대에 내려놓으며 정한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그렇게 증오한다는 알파의 체취가 가득 묻은 베개에 고개를 파묻은 홍지수는 자기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있는지 알기나 할까? 젤리 같은 입술을 살짝 벌리고 미간을 찌푸린 모습은 요즘 자꾸 꿈에 나와 저를 괴롭히는 홍지수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정한은 저도 모르게 다리를 떨었다. 씨발..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일어나 담배를 챙겼다.

베란다로 나가 불을 붙였다. 제 페로몬과 섞이면 좋지 못한 향을 낼 게 뻔해 발현 뒤로는 끊었지만, 최근 들어서 다시 찾게 됐다. 연기를 천천히 내뿜으며 난간에 기댄다. 연기는 금세 밤공기에 섞여 사라진다. 네온사인이 넘실거리는 도시를 내려다본다. 넌 안이상하고? 아까 지수가 했던 말이 귓가에 스친다. 그래, 이상한 건 나다. 꼭 며칠 전과 같은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외출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온 숙소에 진동하던 오메가의 페로몬에 정신이 아찔해졌던 그날.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으며 홍지수의 방에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히트사이클을 이기지 못한 지수가 정신없이 앓고 있었다. 오메가가 약으로 본능을 억누르듯이 알파도 평생 본능을 억누르도록 교육 받는다. 본래 정한의 집안엔 알파가 자주 태어났다. 발현이 늦어 베타인줄로만 알았지만 알파의 본능을 억누르는 교육을 오랫동안 받아 왔단 뜻이다. 오메가와의 관계에서 위압적인 페로몬을 내뿜는다는 차이만 있을 뿐, 알파든 오메가든 본능에 잠식된다는 점에서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누가 누구를 지배한다고?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이마에 손가락을 대자 지수가 움찔거렸다. 그 날 홍지수의 페로몬에 지배당했던 건 저였다.

 

처음 발현이 되었던 날 한 눈에 알아봤다. 홍지수가 오메가라는 걸. 전부터 묘한 향기가 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처음으로 홍지수의 페로몬을 느낀 날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홍지수의 페로몬은 장미와 닮아있었다. 단내를 맡은 벌레가 잔뜩 꼬여 꽃잎이 군데군데 갉아 먹힌 창백한 장미 말이다. 물론 시간이 좀 지난 뒤에야 알았다. 평소의 홍지수가 흘리는 페로몬은 그냥 장미가 아니었다. 가시를 잔뜩 세운 줄기의 비릿함까지도 닮은 홍지수의 향기엔 보랏빛 독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예민한 보라색 장미는 알파가 제 곁에 다가오는 걸 극도로 꺼렸다. 물론 윤정한도 홍지수에게 다가가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상황이 도저히 도와주지를 않았다. 아무리 거리를 지키려고 해도 멤버인 이상 24시간 좁은 공간에 붙어있을 수 밖에 없었고, 대중이 저들을 가까운 사이로 인지하고 있다면 카메라 앞에서는 그 기대에 부응해야 했다. 그게 연예계였다.

 

그때, 그러니까 홍지수의 얼굴을 저도 모르게 쓰다듬었을 때. 아파서 펄펄 끓는 몸을 깨닫고는 이내 손을 뗐지만 금세 정신을 차린 지수에게선 나가라는 말만 돌아왔다. 다급히 홍지수의 이름을 불렀지만 사실 저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수 말대로 나가는 게 맞았다. 뭘 챙겨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챙겨주고 싶다고?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상황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건 누구를 위한 변명인 걸까. 떨어지려면 얼마든지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을 악화시킨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정한은 담배를 비벼 꼈다. 페로몬은 담배연기처럼 희석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홍지수에게 다가가고 싶다. 홍지수를 제 품 안에 가두고 소유하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윤정한은 평생 알파의 본능을 억누르기 위한 교육을 받아왔다. 반대로 말하면 그 정도로 본능은 쉽게 통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다는 건 스스로도 속일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윤정한은 홍지수에게 무슨 짓을 하고 싶은지 본능적으로 알고있었다. 알파의 본능은 서서히 정한을 잠식하고 있었다.

 

 

-

 

 

병원에 다녀 온 이후로 홍지수는 윤정한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었다.

공백기에 좀처럼 잡히지 않는 단체 예능 녹화날이었고, 예능이라는 건 팬들이 방청객으로 와 있다는 소리였다. 멤버들끼리의 우애를 강조하기 위한 에피소드들을 강제로 내놓아야 했고 작가들은 당연히 저들 둘의 에피소드도 미리 준비해달라 요구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중들의 눈에 윤정한과 홍지수는 늦깎이 연습생으로 들어와 데뷔하기까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울고 웃은 죽마고우였다. 그러나 실제로 둘 사이에 대중에게 공개할 만한 에피소드는 크게 없었다. 조율 혹은 약간의 조작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방송가에서 점수를 깎아 먹을 순 없으니 말이다.

 

“홍지수. 우리 이거 해야 돼.”

 

지금도 홍지수는 동생들 옆에 기대 폰을 하고 있었다. 키패드를 누르는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는 게 누구랑 카톡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지수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있던 순영이 정한의 눈치를 보며 ‘형, 정한이 형이 부르는데..’ 하고 말을 꺼낸 뒤에야 제게 눈길을 줬다. 자리에서 일어난 지수가 천천히 다가온다.

 

“이거 아까 서브작가님이, 너랑 나. 숙소 생활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 생각해 오래.”

 

누가 봐도 귀찮다는 표정인 홍지수는 잠시 골몰하다 정한에게 말했다.

 

“그냥 없다구 하자.”

“무슨 소리야?”

“진짜로 없잖아. 우리 사이에 재밌는 일 같은 거. 이런 거 이제 그만 할래.”

 

남들 앞에서 친한 척 해야 하니까 일할 때도 더 붙어야 하는 거고. 이제 그거조차 하기 싫다는 거였다 홍지수의 말은. 지수가 제 할말만 마치고 다시 순영의 옆자리에 앉자 순영은 안절부절하며 둘을 번갈아 봤다. 화가 나진 않았다. 다만 병원에서 무슨 말을 들었을지 어렴풋이 감이 왔다. 보나마나 저를 최대한 멀리하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알파와 오메가의 관계란 아무튼 뻔한 것이니까. 이제 보통 약으로는 조절되지 않는 제 컨디션이 네 옆에 있는 어떤 성격 나쁜 알파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겠지.

홍지수가 원한다면 피해주는 게 맞겠지만 말이다.

 

 

-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가는 길엔 승철이 불러 세워 손짓했다. 밖에서 담배 한 대 하고 들어가자는 소리다. 숙소 근처에 있는 사이 좋게 하나씩 빼어 물고 불을 붙이자 승철이 본론을 꺼냈다. 사실 정한은 아까부터 약간 이 상황이 우스웠다. 무슨 의미심장한 얘기를 하자고 이렇게 폼을 잡냐.

 

“야, 좀 사이 좋게 지내면 안되냐?”

“뭐가.”

“뭘 모르는 척이야... 애들 눈치 보는 거 안보이냐? 적당히 좀 해. 다 큰 놈들이.”

 

멤버들의 팀워크를 조절해야 하는 승철로서는 신경 쓰이는 게 당연했다. 아마 오늘 대기실에서 있었던 일을 순영이 승철에게 말한 모양이었다. 선을 넘은 지 오래라는 것도 알았다. 더 이상은 숨기는 게 숨기는 게 아니었다.

근데 승철아. 우리 사이 좋게 지내면, 큰일 나는데. 빈정거리고 싶은 걸 참고 친구의 등을 두드리며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알파와 오메가가 사이 좋게 지낸다라..

 

-

 

그 뒤로 윤정한과 홍지수는 정말로 의사의 지침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애초에 방도 다른데다 공백기라 연습실 가는 시간만 잘 조절하면 거의 마주치지 않는 생활이 가능했다. 지금껏 이렇게 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안무를 맞추기 위해 멤버들이 모두 모여도 의식적으로 멀리했다. 한 번은 정한이 일부러 지수 가까이에 간 적이 있었는데, 지수가 흠칫 놀라는 것을 보고 그 뒤로는 지수의 계획에 기꺼이 동참했다. 가끔 승철이나 석민, 순영 등이 정한을 차례대로 찾아와 화해는 안 할 거냐며 물어왔지만, 정한은 지수가 하자는 대로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무엇보다. 둘은 서로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외면하고 무시해도, 윤정한은 알파, 홍지수는 오메가다. 베타종의 돌연변이는 결국 본능을 따르는 짐승이다. 홍지수는 윤정한의 페로몬에 동요하고 있었다. 둘 다 그걸 알았다. 알지만 그걸 오랫동안 건드리지 않고 기묘한 줄다리기를 해온 것이다. 일종의 소유이며 관계였다. 한 번도 윤정한이 홍지수를 가진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홍지수가 윤정한의 품을 벗어난 적 역시 한 번도 없는. 이상한 방식의 소유가 이어지고 있었다. 홍지수가 알파를 원하지 않는다면, 윤정한은 기꺼이 그렇게 해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

 

YH /

 

컴백 준비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지막 휴가가 주어졌다. 이 휴식을 끝으로 활동에 아시아투어까지 최소 6개월은 쉬지 못한다는 소식에 멤버 대부분이 본가로 향했다. 정한 역시 고향으로 내려가서 꽤 오랫동안 보지 못할 친구들에게 술을 사고 금방 돌아왔다. 원래는 본가에 잠시 머물 생각이었으나 단순한 변덕이 일었다. 짧은 휴가 탓에 고향에 가지 못한 멤버들이 있었다. 홍지수도 그 중 하나였다. 멤버들끼리의 카톡방을 확인하자 준휘와 명호가 중국친구들을 데리고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홍지수는 내내 카톡방에서도 대답이 없었다.

 

10시가 넘어 도착한 숙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준휘와 명호가 친구를 만날 땐 종종 늦는 경우가 있었어도, 홍지수가 늦는 건 조금 의아했다. 형질 탓에 가십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외박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외투를 벗고 옷가지를 정리하는데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보지 않고도 홍지수인 걸 알았다. 그러나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가시 돋힌 보랏빛 장미 향기 사이에서 역겨운 페로몬을 느꼈다. 같은 알파의 냄새였다.

알파?

정한의 눈썹이 올라갔다. 윤정한이 알기로 홍지수의 생활 반경에 저 말고 다른 알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일부러 밖에 나가서 알파를 만나고 들어 왔단 소리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를 앞서서 일단 화가 났다.

왜?

윤정한은 홍지수를 이해한다 생각했다. 오히려 홍지수 성격에 알파를 받아들이는 게 이상하지. 그러니 이건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상황이었다. 알파와 오메가는 서로를 지배한다. 고고한 홍지수가 고작 동물적 본능 따위로 인해 누군가에게 가만히 지배당할 리 없었다. 홍지수가 저를 끈질기게 피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 아니었나. 오직 저가 생물학적 알파이기 때문에. 그러나 좁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깊은 골이 실은 착각일 수도 있었다.

거실로 나간 정한은 숙소로 막 들어온 지수의 손목을 잡고 물었다.

 

“뭐하고 왔어?”

“알 바 아니잖아.”

 

이거 좀 놔, 지수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정한의 손을 쳐냈다. 윤정한은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목을 잡았던 손을 주머니에 넣고 흥미롭다는 듯이 지수를 관찰했다. 현관에 센서등이 꺼지자 시야가 확 어두워졌다. 정한의 시선을 견디던 지수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정한쪽을 봤다. 거실엔 조도가 낮은 보조등 하나만이 켜져 있어 그 얼굴에 진 음영 등이 더 노골적으로 다가왔다. 정한의 얼굴은 훨씬 성숙해 있었다. 처음 알파로 발현했던 그날 보다도. 약간 노르스름한 눈동자가 번뜩이는 것 같았다.

 

홍지수가 알파를 원하지 않는다면, 윤정한은 기꺼이 그렇게 해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깨달은 건데 말이다. 역시 저가 아닌 알파는 안된다.

순식간에 정한의 페로몬이 퍼졌다. 차갑고 달콤한 향기. 다리에 힘이 풀리게 하는 윤정한의 체취에 홍지수는 당장이라도 그 단단한 목을 끌어안고 매달리고 싶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정한은 여유롭게 물었다.

 

“지수야.”

 

약간 낮아진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도 지수는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안돼?”

“뭐?”

“나는 멤버라서 안되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대체.”

“생각해봤는데, 그거 말고는 없어서.”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아님 다른 이유가 있어?”

“…비켜. 나 들어가서 쉴래.”

 

정한이 도망치려는 지수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다시 물었다.

 

“대답이 힘들어?”

 

정한의 눈빛은 다정하지만 지수의 몸을 구석구석 훑는 것처럼 집요했다. 그 시선만으로도 몸이 벌벌 떨리는 것 같았다. 이제 손목을 빼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 내가 애원하면 자줄래?”

“윤정한...”

 

정한은 그대로 지수의 손목 끌어 입을 맞추다 눈을 들어 지수를 쳐다봤다.

 

“네 탓 아니기만 하면 되잖아.”

“…”

“아니야?”

 

처음부터 거절 따위는 없었다. 거부할 수 없는 알파의 페로몬이 지수를 사로잡았다. 당장이라도 정한의 등과 어깨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싶었다. 엉망으로 섞이고 싶었다. 지수의 몸은 금방 젖어들어 절은 듯이 달큰한 향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걸 신호로 정한은 지수의 몸을 탐닉하듯이 옷을 벗기고 만졌다.

 

흥분한 둘의 페로몬이 뒤섞인다. 짐승 같은 교성이 거실에 퍼지기 시작했다.

 

내가 널 왜 가만히 뒀을까. 결국 이렇게 될 걸. 정신없이 입을 맞추고 밀어 넣었다.

지수는 밀고 들어오는 정한의 몸을 끌어안고 끙끙 앓다 그의 어깨를 물고 귓가에 신음을 흘렸다.

 

-

 

“하아, 너도 알고있었지 윤정한..”

 

정한의 허벅지에 앉아 상박을 끌어안고 허리를 움직이던 지수가 정한을 내려다 본다. 길게 찢어진 눈매에 눈물이며 땀이 맺혀 있었다. 정한은 대답하지 않고 지수의 허리를 잡고 더욱 흔들었다. 지수가 길게 신음했다.

 

그래, 말이 안되는 거였다. 우리가 서로를 거부한다는 건.

처음부터 너랑 이러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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